또 한밤이 지나고 이제 2005년도 이틀 밖에 남지않았읍니다.
중국의 아침은 대부분 그렇습니다만 날씨가 흐릿하여 항상 안개인지 황사인지 분간이 안갈때가 많읍니다.
아침의 상쾌함을 한국에서 처럼 전혀 느껴 볼수가 없읍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잠깐 TV를 켯는데 6~70년대에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하춘화 씨가 한 아침프로에 나와서 노래를 하고 있더군요.
그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가 좋타 ~ 라든지 참 잘부른다 ~ 라는 생각은 안들고 인생이 참 무상하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읍니다,
지금까지 무대공연을 8000여회나 하였고 음반 취입을 2500여곡?(조금은 숫자에 자신없음)이나 한 당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여가수 였던 그가 아침방송에 그것도 관객 몇십명을 앞에두고 노래를 한다는것은 예전의 그였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계속해서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 해지기 시작했어요.
코미언이면서 전 국회의원 이었던 故 이주일 씨 얘기를 하는 대목 이었읍니다.
나이를 조금 드신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 하춘화 리싸이틀 사회를 이주일씨가 보곤 하였는데 이리역(현재는 익산) 폭팔 사고 당시 그옆 극장에서 리싸이틀을 하던중 천정이 무너지는순간 이주일씨가 하춘화씨를 들쳐업고 뛰어나와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얘기는 방송에도 몇번 소개되어 알고있엇지만 그런일로 해서 두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 해졌고 하춘화씨 무대공연 8000회중 7000회를 이주일씨가 사회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주일 씨가 암으로 투병할때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하춘화씨가 아무것도 도와줄수가없어서 가슴이 많아 아팠었다고 소개하고 돌아가시기 얼마전 하춘화씨 병문안 자리에서 이주일씨가 남겼다는 말이 정말로 가슴에 와 닿았읍니다.
"인생을 돌이켜 보건데 6 ~70년대 가난했지만 무대에서 사회를 보면서 먼저 하늘로 보낸 자식과 부인과 함께 조그맣게 나마 집장만 하는 즐거움 등을 느끼며 보냈던 시절이 제일로 행복 했었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고 회상을 하던데.
그렇습니다 행복은 멀리있거나 또는 화려한 것도 거창한 것도 또한 돈과 권력도 아닐거란 생각이들더군요.
왜냐하면 故 이주일씨도 돈과 권력 이라면 권력 이랄수있는 국회의원 까지도 해보았으니까요.
(아침 08:05분에 찍었는데 시야가 뿌였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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