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간 새벽 5시20분
한국시간으론 6시20분이니 보통의 한국 가정 에서는 분주한 아침시간이다.
회사일로 밤을 꼬박 새고 나니 목도 칼칼하고 시장기가 배속 가득하다.
제주시 어느 골목길 식당에서 팔던 갈치호박국 한그릇 먹었으면 세상 부러울게 없겠다.
어른이 되어 고향을 떠난 뒤에는 맛있는 식당을 찾아 다니면서 먹지만 어릴적 초등학생 중학생 때는
아버지가 밤새 낚시로 낚아온 은빛 찬란한 은갈치를 그저 툭툭 토막내어 배추 잎사귀 와 함께 푹 끓이고 王소금 으로 간을 맞추면 그새벽 입안 가득한 황홀함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조그만 섬 마을에서 태어난 福이라면 福으로 지금은 물리적으로 도저히 맛볼수 없는 귀한 먹거라들을
아주 오래전에 3 ~40 년 전에 맛 보았기에 더욱 더 그리운게 아닌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비싸고 귀한 자연산 전복은 아주 특별한 보양식 이었다.
어른 손바닥 두개보다도 더큰 전복을 캘라치면 해녀이신 우리 어머님들은 목숨을 걸고 캔단다.
열길 물속으로 잠수를 해 들어가 소라,성게등 일반 어종들을 채취하고 물숨(무호흡)이 다되어
올라서려면 바다의 영물같은 큰 전복이 눈에 띈 다는것이다.
그냥 올라 가려니 너무나 귀하고 고가 인지라 두고 가기가 아깝고 캐고 올라 가려니 숨이 차 오르고
그판단을 잘못하여 돌아가신 해녀들도 꽤 있으셨단다
그렇게 어렵게 캔 전복을 1년에 한두번 자식들 보양식으로 전복죽을 쑤어서 먹이곤 했으니
아주 특별한 보양식이라 아니 할수가 없다.
어릴적 고향 앞바다 성산포에 가면 산처럼 쌓인 고등어와 갈치 그리고 고등어배 멸치배 그것이
성산포항의 기억의 전부라 할수있다.
지금이야 성산 일출봉에 올라 가끔 옛추억을 떠올리는게 전부지만 3~40년전 성산포항은 그렇게
활항 그자체였다.
생물 고등어값이 얼마나 싼지 100원 동전 하나에 고등어 하나 값이 아니었나 싶다.
그당시는 고등어 배라 하여 선단을 이루어 그믈로 고등어를 잡아 보름,혹은 한달여 만에 성산포항으로
귀항하여 판매가 이루어졌던 모양이었다.
수십척의 고등어배가 풀어놓는 고등어와 오랫만에 뭍에 오른 어부들이 풀어놓는 돈다발에 오죽이나
일대가 풍성 하였겠는가.
지금은 고등어 또한 귀한 대접을 받아 서울에서 회 한접시 먹을라 치만 만원짜리 몇장은 지출 하여야
한마리의 고등어 회를 맛볼수 있으리라.
그래도 서울에서 가끔은 먹어주는 것이 갈치 고등어 회 이고 제주도 에 가면 거의 필수로 먹어주곤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고향이고 추억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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